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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Photo Story/Europe

폴란드 아우슈비츠로 이동

헝가리로 가는 중에 아우슈비츠를 들렀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배경이기도 하고,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도 일부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을 많이 담지는 못했다.

그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상념속에 있었다.
우리나라 서대문형무소도 끔직한 곳인데.....



아우슈비츠 [Auschwitz]


오슈비엥침(Oświęcim)이라고도 한다.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작은 공업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터는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다. 폴란드명은 오슈비엥침이다. 철도의 교차점으로 화학·피혁·농기구 제조 등이 이루어진다.
13세기 이후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폴란드분할시대인 1772년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가
1918년 폴란드가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39년에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였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힘러의 명령 아래
나치스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는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위치한 아우슈비츠는 문명을 배반한 야만의 극치이며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행위의 흔적이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상징인 강제수용소로 잘 알려져 있는 아우슈비츠는 원래 인구 5만 명의 작은 공업도시로,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이라고 한다.

이 도시의 외곽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생지옥을 만나게 된다.
학살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유대인들을 실어 나른 철로,
고문실 등이 끔찍했던 광기의 역사를 전해 준다.


1940년 봄, 친위대 장관인 하인리히 힘러가 주동이 되어 가시철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을 갖춘 공포의 강제수용소를 세웠다.
그 해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었으며,
1942년부터 대학살을 시작하였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다.
이처럼 가스,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 심지어는 인체실험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분의 2가 유대인이다. 희생자의 유품은 재활용품으로 사용했고, 장신구는 물론 금니까지 뽑아 금괴로 만들었으며,
머리카락을 모아 카펫을 짰다. 뼈는 갈아서 골분비료로까지 썼으니 사람의 몸뚱이 중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1945년 1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치는 대량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막사를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수용소 건물과 막사의 일부가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폴란드의회에서는 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희생자를 위로하는 거대한 국제위령비를 비르케나우에 세웠으며,
수용소 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또한 나치의 잔학 행위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유네스코는 1979년 아우슈비츠를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하였다.


아우슈비츠는 많은 분들이 다녀오신 곳이라 인터넷에 검색하면 많은 사진과 정보들이 있을 것 같아 몇 장면만 포스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