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 Photo Story/Europe

스페인-바르셀로나 [Barcelona]-1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제2의 도시로서 우리에게는 1992년 올림픽을 계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정열과 투우... 그리고 떠오르는 단어 바르셀로나.

그러나 바르셀로나를 조금 더 보면 스페인 역사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점령과 왕국의 교체, 그리고 왕국의 교체와 함께한 종교의 변화 등.....

기독교와 카톨릭,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역사도 많이 있다.

 

스페인 제2의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고,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으로 온난한 기후를 나타낸다.
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 최대의 상공업 도시이다.
약 10㎞에 걸쳐 아베니다 델라 디아고날 거리가 바르셀로나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딕지구라 불리우는 구시가지와 현대의 빌딩이 들어차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되어 진다.

 

바르셀로나의 역사적 이력은 네이버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다.

마르세유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의 도시를 기원으로 하며,
BC 3세기에 이 곳을 지배한 카르타고인이 바르시노(Barcino), 즉 바르카가(家)의 도시라고 명명하였다.
BC 201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아직도 구(舊)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는 고딕가(Gothic街:바리오·고티코스)에는 그 당시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8세기에는 무어인이 점령하였으나, 801년에 샤를마뉴(카를大帝)가 이를 해방하고 지배하였다.
12세기에는 카탈루냐 백작과 아라곤 여왕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이 이루어졌고,
바르셀로나는 그 수도로서 해운·수공업·금융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였으며, 14세기에는 그 절정에 달하였다.
이 무렵에 지어진 고딕식 대성당(13세기 말)을 비롯하여 역사적 건조물들이 구시가 중앙에 많이 남아 있으며,
당시의 바르셀로나의 해양법(海洋法)인 콘술라도 데 마르는 오랫동안 그 권위를 유지하였다.
1469년에 아라곤과 카스틸랴의 통일로 지방도시가 되었으나,
고유의 카탈루냐어(語)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1550년에 창립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에스파냐의 선진지역으로서,
카탈루냐 문화에 대한 긍지와 진보적 시민자치의 전통 및 강력한 상공업을 기반으로 번번이 독립을 요구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17∼19세기에는 프랑스군의 침공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북부 카탈루냐 지방을 프랑스에 빼앗기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는 에스파냐의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1936∼1939년의 에스파냐내란 당시에는 공화정부(인민전선정부)의 마지막 거점이 되었다가
1939년 1월에 프랑코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스페인 문화가 왜 복잡다양한지..... 역사를 보면 조금 이해가 된다.

바르셀로나를 가면서 해변에 들렀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누드비치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모두 옷을 벗고 있는 것은 아니고, 자유스럽게 벗기도 하고 입기도 한다고 한다.^^